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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16

퇴사일기 네 번째_일상 생활

퇴사한지 2주가 지나간다.

아직도 2주 밖에 되지 않았나...?

회사 다닐 때는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서 '어떤 여유'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나의 시간들이 꾀나 여유있고 알차게 지나가고 있다.


매일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라다.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어지는게 좋다.

그리고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스트레칭 운동이 나에게는 아주 잘 맞는다.

몸이 굉장히 개운해지고 기분이 상쾌하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허기를 참고 운동을 하고 오면 허기가 사라져 아침을 소식하게 된다.


짬짬이 유럽 여행 준비도 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참고해서.


여유 있게 책도 읽는다.

졸음을 참아가며 읽는 책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으로 따뜻한 차 한잔과 책을 읽는다.


보고 싶은 영화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홀짝이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영화를 보는 기분이란. 캬.

맥주 한 병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약간은 알딸딸한 기분에 마음은 더 여유롭고 행복해진다.





가장 좋은 건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전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오늘의 녹즙을 한 병 마시고(조금이라도 내 건강에 도움이 될거라는 믿음에)

다이어리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밤 사이 쌓인 이메일들을 읽으면 해야 할 리스트는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거래처들과 하루종일 통화를 하고,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 시즌 상품들을 관리하고, 다음 시즌 상품을 생각하고,

거래처 미팅을 하고, 거래처랑 싸우기도 하고, 팀미팅을 하고, 팀장님이 부르며 달려가고...해야 할 일은 또 하나 늘어나고...

구내식당에서 맛 없는 점심을 먹고나서 기분 전환을 위한 후식은 필수였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와 남은 일들을 눈이 빠져라 모니터를 들여다 보며 시간에 쫓기듯 일을 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퇴근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인터넷 서핑 한 번 하지 않았고, 엑셀도 능숙해서 업무 속도도 빨랐으며,

일 할 때는 집중도 잘했었다. 내 일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책임감도 매우 강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내 담당 카테고리를 조금만 줄여주었으면...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했다.

여러 번 윗분들께 얘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내가 일을 잘 해왔기에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지쳐갔다.

살은 쭉쭉 빠졌고,

거래처들과 미팅 할 때마다 '살이 더 빠지셨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이신다'는 얘기를 계속 들었다.


그랬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드디어 주말'이 찾아왔다.

주말은 또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그리고 어김없이 월요일은 다시 찾아왔다.


살이 4키로가 빠졌고,

스트레스로 휘청 거리며 링거를 맞았고, 

피부가 매일 조금씩 거칠어지고,

다크서클로 눈은 쾡하고,

항상 미간에는 인상을 쓰고 있고, 

수십번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5년여 간 '사회생활'에 찌들어서 달라진 나를 발견 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만뒀다.

회사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회사에 가도 지금 이 상태로는 어떠한 에너지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이직이 아닌 퇴사를 결심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너무나 잘 한 선택이었다고.

1%의 후회도 없다.


2주 사이에 살이 차올랐고,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것저것 발라도 거칠거칠하던 나의 피부에 드디어 광이 나기 시작했다. 하하하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더 이상 괴롭거나 힘들지가 않다.

목과 어깨의 통증도 많이 없어졌다.

그리고 한숨을 한 번도 쉬지 않은 것 같다. 2주 동안. 정말 신기하다.


재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별거 아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할 수 있는 지금의 여유가 참 좋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했고

훼손된 주민등록증 재발급도 신청했다.

치과 검진도 받았고,

미뤄둔 사랑니도 큰맘 먹고(?) 발치 하기로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고,

안쓰는 물건들을 모아 기증도 하고, 팔기도 했다.

쌓아두었던 사진과 여행 티켓, 데이트 흔적들을 모아 예쁜 앨범에 정리도 하고 있다.


정말 사소한 이런 일들을 하나씩 해치울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

왜 내가 겨우 이 정도의 여유도 없이 살았나 싶다.



어제는 오빠랑 서울 광장 집회에 다녀왔다.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정말 잘 다녀왔다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 분노로 하나됨을 느끼고 돌아왔다.









 

매일이 주말 같다.

주말 이틀이 너무 아쉬워 주말이 3일이었으면 하던 내가 매일 매일을 주말처럼 보내고 있다 :)

정말로 소중하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먼 훗날 이 시기를 나는 어떻게 추억할까 생각해 본다.

'돈이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더 여유있게, 더 많은 걸 해볼걸'이라고 생각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