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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16

퇴사일기 두 번째_새로운 일상

퇴사 삼일 째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월, 수, 금 요가 등록을 하고 화, 목은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모두 9시 수업으로.


그리고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있다.

신문을 아침에 읽었던 기억은 벌써 몇 년쯤 된 것 같다.


운동 후 신문을 보고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일과라고 해봤자 삼일 동안 방 정리만 온 종일 했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든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너무나 잘 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뒤가 켕긴다고 해야 할까?

어쨋든 썩 자유롭지도 않고, 생각만큼 기대만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아직은...

소리 지를 듯 행복감을 느끼고, 불안감 따위는 단 0.1%로도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그동안은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

20대 초중반까지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아무리 휴학을 하고 방학을 맞이해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잠시 휴가를 다녀오곤 했지만 역시 '다시'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난생 처음으로 '돌아갈 곳'이 없다.

운 좋게 졸업 전 바로 취업 했기 때문에 나는 29년을 살면서 지금까지 갈 곳이 없는 일은 처음이다.

그래서 조금 낯설기도 하다.

그래서 불안한가 보다.

나는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하고, 할 일이 있어야 하고, 갈 곳이 있어야 하고, 처리할 게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살아온 환경이 날 그게 편안하게 만들었다.


집에 하루종일 있으니 자꾸 배가 고프다.

예전에 아빠가 몇개월씩 집에서 쉬실 떄 '하루종일 놀면서 왜 저리 많이 먹어?' 라는 못된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 그게 이해가 된다.

공허하달까? 뭔가 자꾸 꾸역꾸역 집어 넣게 된다...


사실 엄마 눈치도 보인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당분간이라도 편히 쉬라고, 엄마는 널 믿는다고..넌 항상 잘 해왔으니까 조금은 쉬다 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지만,

우리 엄마는 위로는 커녕 '어쩌려고... 취업도 어려운데... 언제까지 쉬려고... 이제 뭐하려고...'라고 말하는 엄마다.

엄마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가끔은 '우리 부모님이 지혜롭고 마음 따뜻한 지성인이었으면...'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아무튼 눈치가 보여서 내가 먹은 설거지는 내가 한다.

(설거지 할게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먹는 족족 다 설거지 거리다..에혀)

청소도 열심히 한다...


마음 편히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더 좋은 곳으로 재취업 할 수 있을까 하는 두 가지 마음이 하루종일 공존한다.

어쨌든 나는 11월 28일 - 12월 8일까지 영국 여행을 가야 해서 그때까지 놀아야 하는 것은 틀림 없다.

그럴거면 차라리 마음 편히 놀아야 한다.

일단 이력서는 내려놓고, 쉬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이제는 조금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고 싶다.

지금까지는 항상 모든 일을 빨리 빨리, 서두르며, 대충 하느라 '생각'이라는 걸 많이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이제 혼자서 생각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다.

공부도 좀 하고 싶다.



아무튼 오늘은 방 정리를 95%까지 끝냈다.

(5%는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몇 가지 물건들이 아무데나 놓여있다..)





오늘 저녁 나와 마무리를 해준

보습감 있는 핸드크림과, 캔들 그리고 따뜻한 차 한잔...♡